포스터를 보면 솔직히 너무 호들갑스러운 문구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별 기대를 안 하고 보았다. 사실 유명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게다가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오히려 오락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나니 완전 대박이었다~!!!
내가 2010년에 본 영화 중 TOP 3 안에는 확실히 들어간다.
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스포일러는 꼭 조심해야 한다.
난 포털 사이트에서 "그을린 사랑"으로 검색을 했을 뿐이고, 영화의 대략적인 정보 페이지로 이동하면서 밑에 네티즌 리뷰 목록이 떠 있었을 뿐이고, 그 중 하나의 리뷰 제목이 누구라도 1초만 생각하면 이 영화의 숨겨진 결말을 쉽사리 유추할 수 있도록 암시적으로 적혀 있었을 뿐이고, 나는 결말을 안 채 이 훌륭한 영화를 봐야 했을 뿐이고...
아아아아악 짱나~!! 그 리뷰 쓴 놈은 제정신인가. 인터넷질 하는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 건가. 그렇게 암시적으로 적어 놓으면 못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지능적 네타바레꾼인건지. 그것도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영화의 줄거리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다. 두 쌍둥이 남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동안, 자신들이 전혀 모르고 있던 어머니의 충격적인 과거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공간적 배경이 직접적으로 영화 안에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찾아보니 '레바논 내전'이 이 영화의 배경이라고 한다.
인류가 이 지구상 이곳저곳에서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겪었고 또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끔찍한 사건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일어나서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기사로 실리고 TV로 방송된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어떠한 곳에서 일어난 잔혹한 사건들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능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도는 사건을 아무래도 표피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죽어나가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숫자나 상투적인 이미지에는 무감각할지 몰라도, 피해자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정작 잘 알지 못한다.
영화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통해서 한 사람이 전쟁통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또 그것을 이겨냈는지를 그 남매의 시선으로 보여 준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자극적이고 잔인한 영상들로 그 고통을 표현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옆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고문이 끝난 뒤의 비참한 몰골만을 보여 주며,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잔혹한 장면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상상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의 연출을 좋아한다. 소설처럼 문장으로 서술하며 행간을 상상하게 할 수 없는 영화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식일 것이다. 고문 장면을 하나하나 보여 준다면 아예 스플래터 무비처럼 보일 수도 있고, 나중에는 그 이미지 자체에 무감각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비교적 담담하게 그리다가도 아주 가끔씩 충격적인 사실을 가르쳐 주며 그 때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점점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어 가는 남매의 시선에 나의 시선이 조응하게 된다. 마지막 비밀이 풀리는 순간에, 나는 네타로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딸과 동시에 "허업"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나중에는 사람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고난을 겪어냈던 어머니의 과거에 대한 경악보다도,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어머니에게 그러한 과거와 비밀이 있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남매의 기가 막힌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그 심정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 갑자기 오싹해지기도 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누군가가, 사실은 어쩌면 저런 엄청난 비밀을 혼자 품고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아픔을 안고서도 두 남매를 키워낸 그 여인, 그 어머니의 강인함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그 노래하는 여인을 강하게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일까. 어머니로서의 모성애뿐만이 아니라, 분명 한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긍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최근 덧글